김선행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헌, 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술부(述夫)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16년(숙종 42)
  • 사망 연도1768년(영조 44)
  • 본관안동(安東)
  • 주요 관직대사헌|좌윤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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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술부(述夫). 김수일(金壽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대(金盛大)이고, 아버지는 김시서(金時敍)이며, 어머니는 송이석(宋彛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9년(영조 15)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가 되고, 이어 지평(持平) · 교리(校理) · 수찬(修撰) · 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1749년 헌납(獻納) · 사간 · 보덕(輔德)을 거쳐 1755년 도승지 · 예조참판이 되었다. 1756년 수원부사 재직시에는 경내의 흉년으로 농민들의 양곡이 떨어져 폐농지경이므로, 창고에 남아 있는 향미(餉米: 군량미)를 나누어주도록 상소하였다. 1757년 대사헌이 된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임하였는데, 특히 인륜을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엄격하였다.

1760년 도승지 · 함경도관찰사를 거쳐서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1764년 조참(朝參)에서 간언이 없다고 영조가 책망하자, 옛 성왕의 간하는 법은 언관을 책하는 데 있지 않으므로 대신을 책하지 말라는 소를 올렸다가 대사헌에서 파직되었다. 그 뒤 예조참판을 지냈고, 1766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68년에는 다시 대사헌과 좌윤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상소 내용 : 『영조실록』 88권, 1756년(영조 32) 7월 9일. "수원 부사 김선행이 백성들에게 유고향미를 나눠줄 것을 상서하다"

  • 주3

    : 상소와 파직 : 『영조실록』 103권, 1764년(영조 40) 1월 16일. "대사헌 김선행과 대사간 권도를 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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