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49년 헌납(獻納) · 사간 · 보덕(輔德)을 거쳐 1755년 도승지 · 예조참판이 되었다. 1756년 수원부사 재직시에는 경내의 흉년으로 농민들의 양곡이 떨어져 폐농지경이므로, 창고에 남아 있는 향미(餉米: 군량미)를 나누어주도록 상소하였다. 1757년 대사헌이 된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임하였는데, 특히 인륜을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엄격하였다.
1760년 도승지 · 함경도관찰사를 거쳐서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1764년 조참(朝參)에서 간언이 없다고 영조가 책망하자, 옛 성왕의 간하는 법은 언관을 책하는 데 있지 않으므로 대신을 책하지 말라는 소를 올렸다가 대사헌에서 파직되었다. 그 뒤 예조참판을 지냈고, 1766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68년에는 다시 대사헌과 좌윤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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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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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상소 내용 : 『영조실록』 88권, 1756년(영조 32) 7월 9일. "수원 부사 김선행이 백성들에게 유고향미를 나눠줄 것을 상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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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상소와 파직 : 『영조실록』 103권, 1764년(영조 40) 1월 16일. "대사헌 김선행과 대사간 권도를 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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