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헌납(獻納) · 부교리 등을 거쳐 1689년 이조좌랑을 지냈다. 1694년에는 이조정랑 · 겸문학 · 응교(應敎) · 집의(執義) · 사간 · 사인(舍人)을 차례로 역임하고, 1696년에 양주목사(楊州牧使)가 되었으나 흉년을 당하여 굶주린 백성들의 구제에 힘쓰지 않았다 하여 삭직당하였다.
그 뒤 곧 승지로 기용되었으며 대사간을 거쳐 1698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때 혹심한 식량난에 처해 청나라로부터 쌀 4만섬을 수입하였는데, 이에 따르는 국가의 체면과 사상(私商)들의 농간을 우려하였다.
1699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결백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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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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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홍문록 수록 : 『숙종실록』 16권, 1685년(숙종 11) 11월 16일. "도당에서 홍문록을 가려 15인을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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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대사간 임명 : 『숙종실록』 33권, 1699년(숙종 25) 3월 9일. "충청 관찰사 김성적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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