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감찰, 동지사서장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치당(萬痴堂)
  • 여일(汝一)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636년(인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감찰
  • 출생 연도1576년(선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계찬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20일
금곡서원 미디어 정보

금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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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감찰, 동지사서장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일(汝一), 호는 만치당(萬痴堂). 김영산(金永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아버지는 김섭(金燮)이며, 어머니는 양희열(楊希悅)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서인으로서 대북(大北)에 반대하여 두문불출하다가, 1624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감찰 등을 지냈다.

1630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병자호란 때 묘사(廟社)를 따라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그곳에 적군이 침입하자 홍명형(洪命亨)과 같이 김상용(金尙容)을 따라 남루(南樓)에 올랐다. 김상용이 순절하려고 여러 사람을 물리치고 김수남에게 말하기를, “벼슬의 질서에는 높고 낮은 분별이 있으나 신하로서 다 같은 점은 나라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뜻에 있는 것이다. 내가 그대와 같이 죽으면 유감이 없겠다.”하니, 김수남은 “사국(死國)의 두 글자는 남아로서 정해진 바이니, 나라의 일이 이에 이르렀는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후일에 바라는 바는 오직 내 두 아들이 어머니를 위로하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겠다.”라고 쓴 유서를 노복에게 주어 처에게 전하게 하고 김상용과 함께 남루에서 분사(焚死)하였다.

뒤에 공조좌랑 · 승지에 추증되었다.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은진의 금곡사(金谷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만력38년경술윤3월초6일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八年庚戌閏三月初六日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69])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서장관으로 명나라행 : 『인조실록』 22권, 1630년(인조 8) 3월 21일. "한명욱을 동지사 겸 성절사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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