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감찰, 동지사서장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병자호란 때 묘사(廟社)를 따라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그곳에 적군이 침입하자 홍명형(洪命亨)과 같이 김상용(金尙容)을 따라 남루(南樓)에 올랐다. 김상용이 순절하려고 여러 사람을 물리치고 김수남에게 말하기를, “벼슬의 질서에는 높고 낮은 분별이 있으나 신하로서 다 같은 점은 나라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뜻에 있는 것이다. 내가 그대와 같이 죽으면 유감이 없겠다.”하니, 김수남은 “사국(死國)의 두 글자는 남아로서 정해진 바이니, 나라의 일이 이에 이르렀는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후일에 바라는 바는 오직 내 두 아들이 어머니를 위로하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겠다.”라고 쓴 유서를 노복에게 주어 처에게 전하게 하고 김상용과 함께 남루에서 분사(焚死)하였다.
뒤에 공조좌랑 · 승지에 추증되었다.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은진의 금곡사(金谷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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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만력38년경술윤3월초6일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八年庚戌閏三月初六日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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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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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서장관으로 명나라행 : 『인조실록』 22권, 1630년(인조 8) 3월 21일. "한명욱을 동지사 겸 성절사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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