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황해도관찰사,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부응교(副應敎) · 장령(掌令) · 응교 등 주로 삼사의 언관직을 지내다가, 1537년 형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부제학(副提學)이 되어, 외척들의 궁궐출입을 엄격히 할 것, 절검(節儉: 검소함과 절약)을 숭상할 것, 대신을 중히 여길 것, 백성들의 고통을 살필 것,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염치를 기를 것 등을 상소하였다. 이어 호조참의를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 ·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541년 동부승지로 정시 문과에 장원을 차지하였다.
1546년 공조참의로 윤원로(尹元老)를 탄핵하였으며, 같은 해 죽었다. 천문에도 밝아 관상감(觀象監)의 일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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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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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상소 내용 : 『중종실록』 87권, 1538년(중종 33) 6월 30일. "홍문관 부제학 김수성 등이 절약과 검소 빛 백성의 구휼에 관한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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