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성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황해도관찰사,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유초(有初)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546년(명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참의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수
  • 최종수정 2026년 0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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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황해도관찰사,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유초(有初). 호조판서 김길통(金吉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김순명(金順命)이고, 아버지는 김세영(金世英)이며, 어머니는 유백손(柳伯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성균관 유생으로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원운동을 벌여 소두(疏頭: 상소의 우두머리)로 의금부에 수금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52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33년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또다시 복직되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 뒤 부응교(副應敎) · 장령(掌令) · 응교 등 주로 삼사의 언관직을 지내다가, 1537년 형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부제학(副提學)이 되어, 외척들의 궁궐출입을 엄격히 할 것, 절검(節儉: 검소함과 절약)을 숭상할 것, 대신을 중히 여길 것, 백성들의 고통을 살필 것,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염치를 기를 것 등을 상소하였다. 이어 호조참의를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 ·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541년 동부승지로 정시 문과에 장원을 차지하였다.

1546년 공조참의로 윤원로(尹元老)를 탄핵하였으며, 같은 해 죽었다. 천문에도 밝아 관상감(觀象監)의 일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상소 내용 : 『중종실록』 87권, 1538년(중종 33) 6월 30일. "홍문관 부제학 김수성 등이 절약과 검소 빛 백성의 구휼에 관한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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