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지영천군사, 판중추부사,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57년(세조 3) 사예(司藝)로서 문과 중시에 2등으로 급제해 첨지중추부사가 되고, 이듬해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정조부사(正朝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에 한성부윤, 이듬해 판상주목사, 1464년 지중추원사 ·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66년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 모두 장원, 판중추부사에 오르고 쌀 10석이 하사되었는데, 문무과 장원에게 쌀을 하사하는 것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어서 호조판서를 거쳐 1469년(성종 즉위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오르고,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74년 영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세종 때 수양대군 · 안평대군이 존경하던 고승 신미(信眉)의 동생으로 불경에 통달하고 제자백가(諸子百家) · 육경(六經)에 해박해 뒤에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시문에 뛰어나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한림 진감(陳鑑)과 「희정부(喜睛賦)」로써 화답한 내용은 명나라에까지 알려졌다. 그리고 성삼문(成三問) · 신숙주(申叔舟) · 이석형(李石亨)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문명을 다투었다.
『치평요람(治平要覽)』 · 『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의 편찬, 『석가보(釋迦譜)』의 증수, 『명황계감(明皇誡鑑)』 · 『금강경(金剛經)』 등의 번역에 참여했으며, 「원각사비명(圓覺寺碑銘)」을 찬하고 사서오경의 구결(口訣)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식우집(拭疣集)』이 있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식우집(拭疣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기문(大東奇聞)』
- 『해동잡록(海東雜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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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각주 입력 : 『국조문과방목』 卷之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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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발영시 장원 : 『국조문과방목』 卷之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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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김수온 저술 : 『식우집(拭疣集)』[한국문집총간 9] (국립중앙도서관 810.819-민959ㅎ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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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성종실록』 130권, 1481년(성종 12) 6월 7일. "영산 부원군 김수온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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