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거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지훈련관사, 중추원부사, 판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중공(仲恭)
시호
평간(平簡)
이칭
밀산군(密山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13년(태종 13)
사망 연도
1481년(성종 12)
본관
밀양(密陽)
주요 관직
지훈련관사|중추원부사|판강릉부사
정의
조선전기 지훈련관사, 중추원부사, 판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공(仲恭).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박경빈(朴景斌)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32년(세종 14) 문음으로 별시위(別侍衛)에 속하였다. 내금위(內禁衛)로 옮겨 호군(護軍)으로 있다가 1442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대호군으로 세자우익위(世子右翊衛)를 겸하였다. 그 뒤 지훈련관사(知訓鍊觀事)를 거쳐 1443년 북청도호부사(北靑都護府使)를 지냈다.

1449년 경흥도호부사(慶興都護府使)가 되어 새로 설치된 육진(六鎭)을 수비하여 야인정벌에 공을 세웠다. 문종·단종 때 대호군·경상도처치사(慶尙道處置使) 등을 역임하고, 1455년(세조 1) 첨지중추원사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승진되었고 같은 해 판강릉부사(判江陵府事)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어, 주민의 청에 따라 임기만료 뒤에도 계속 유임되어 4년간 재임하였으며, 1460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69년(예종 1)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이 되었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하여졌다. 그 뒤 경상우도 및 충청도의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무예에 뛰어났다. 시호는 평간(平簡)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문종실록(文宗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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