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관은 1909년경 한말 궁내부(宮內府) 주임관(奏任官) 및 전선사장(典膳司長)으로 있으면서 궁중 요리를 하던 안순환이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개점한 20세기 최초의 조선 요리옥이다.
1909년 관기제도(官妓制度)가 폐지되자 당시 어전(御前)에서 가무를 하던 궁중 기녀들이 모여들어 영업이 점차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건물은 2층 양옥으로 1층은 일반석, 2층은 귀빈석이었으며, 매실이라는 특실도 있었다. 주로 일본과 조선의 고관대작이나 친일계 인물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며, 문인과 언론인들도 출입하였다.
1918년 5월 24일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안순환은 장춘관(長春館) 주인 이종구(李鍾九)에게 명월관 간판을 내주어 서울 돈의동 139번지(종로구 돈화문로5가길 1번지, 지금의 피카디리극장 자리)에 명월관 별관 간판을 걸게 하였다.
안순환은 이종구의 소개로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에 위치한 순화궁(順和宮) 자리에 명월관 분점격인 태화관(太華館)을 개점·영업하였다. 하지만 태화관에서 1919년 3월 1일에 33인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기미독립선언을 계기로 태화관은 문을 닫게 되었고, 1921년경 안순환은 식도원(食道園)이라는 요릿집을 새로 개점하였다.
한편 이종구가 경영한 명월관은 3·1운동 이후 우국지사들의 연락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 운영방식으로 이종구가 대지와 가옥을 소유했으며, 영업권은 종업원들이 공동 관리했다. 그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공산군의 종로 일대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공산군의 철수 당시 이종구는 납북되었고, 명월관은 불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