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7월 27일 영업규칙 위반으로 당시 종로경찰서로부터 영업정지처분을 받았다가 그해 8월 12일 심진택(沈振澤)의 명의로 다시 허가를 받아 재개업을 하였다. 주로 장사하는 신흥부호의 출입이 잦았고, 당시 명월관(明月館)·장춘관(長春館)·식도원(食道園) 등과 함께 한국요리 전문점으로 이름이 높았다.
1923년 1월 4일 장택상(張澤相) 등이 가담한 고학생자조단체(苦學生自助團體)인 이른바 갈돕회사건(일명 신년 연합 간친회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나 파문을 일으킨 바 있으며, 1934년경 경영주인 최남(崔楠)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이기붕(李起鵬)을 지배인으로 고용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혼란기에는 간첩사건으로 연루되었던 기생 김소산도 국일관에서 일하였다. 1950년 6·25전쟁 뒤부터는 정객·기업가 등의 출입이 잦았으며, 당시 송죽관(松竹館) 등과 함께 일류요정으로 손꼽혔다.
요리는 한국요리가 주를 이루었고 술은 청주였으며, 접대여인들은 권번(券番) 출신인 기생들로서 한복을 입고 술을 따랐다.
노래와 춤으로는 우리나라 창·잡가·노랫가락 등을 불렀고, 검무(劍舞)·남무(男舞)·북춤 등을 추었으며, 가야금병창 등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미국 군인들의 영향을 받아 서양 음악에 맞추어 손님과 함께 춤추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국일관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개점 당시부터 현재까지 존속되어온 상호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1997년 ‘국일관프라자’라는 현대식 첨단복합빌딩으로 변신하였고, 2000년 12월에는 지하 7층 지상 15층 초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국일관프라자는 현재 국일관 드림팰리스로 명칭을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