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는 세계 제3위 대도시이고 미국의 태평양 방면 관문으로 하루 평균 10만 명이 출입하며 1,700여 대의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곳이다. 재미 한국인이 이곳에 많이 모여 사는 것도 이러한 조건 때문이며, 더욱이 1972년 대한항공이 로스앤젤레스에 취항하면서부터 한국인들이 대량으로 진출하여, 로스앤젤레스에 한국인들이 밀집한 올림픽가(街)에 코리아타운(Korea Town), 즉 한인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의 핵심 지역은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웨스턴 애비뉴(Western Avenue) · 후버 스트리트(Hoover Street) · 월숴 불바(Wilshire Boulevard) · 피코 불바(Pico Boulevard) 등에 가로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이는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의 서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피코 하이츠(Pico Heights) · 산호세(Sanjose) 등에 속하는 지역이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활공간을 더욱 넓혀 가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로스 훼리츠(Los Feliz) · 윌콕스(Wilcox), 남쪽으로는 웨스트 아담스(West Adams) · 크렌쇼(Crenshaw) 지역까지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한국인 37%정도가 한인촌에 거주하며, 특히 핵심 지역인 올림픽가 부근에 약 15%가 거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80년 로스앤젤레스 시의회가 이 지역을 코리아타운이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은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민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1967년경 한인촌 핵심인 올림픽가에 한인식당 2개소와 한인식품점 2개소가 생겨났다. 1970년에는 미국에서 가발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에 종사하는 재미 한국인들이 상당한 이익을 보아 한인촌에 모여들었으며, 1973년에는 석유파동을 계기로 재미 한인들이 주유소를 차려 크게 번창하기도 하고, 또 한국인 노동력을 모아 일을 하는 청소업도 유행하였다. 불법 체류 한국인들은 한인촌 안에서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며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면서 한인촌은 공동체적 성격이 짙어졌다.
1975년을 전후로 한인촌의 인구가 7∼8만 명에 이르자, 한국인들이 종사하는 직종은 훨씬 다양해졌고 더불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도 현저히 증가하였다. 예컨대, 식당 · 식품점 · 술집 등이 크게 늘어났고, 한국인을 위한 선물가게가 생겨났다. 또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 · 변호사 등의 전문직종이 나타났으며, 한국과 교역을 하는 무역상도 증가되었다.
한편 미국이 섬유류에 대한 쿼터제를 강화하여 외국으로부터의 의류 수입을 제한하자 재미 한국인들은 봉제 하청업에 손을 대어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부동산중개업 · 보험회사 등도 성행하였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에 한국인들이 밀집한 이유 중 하나는 한인촌에서 운영하는 사업의 성격에 있다. 여기서의 사업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나뉜다.
한국인 대상의 장사에는 한국식당 · 한국술집 · 떡집 · 방앗간 · 한약방 · 식품점 등이 있다. 특히 식품점은 도매가게 기능을 하여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의 서부 · 중부 여러 주에 흩어져 있는 한국식품점 내지 동양식품점의 도매상 역할을 하고 있다.
떡집이나 방앗간은 떡을 즐겨 먹는 한국인 음식 문화 때문에 한인촌에 당연히 생겨날 만한 업종일 뿐 아니라 한국인을 상징하는 기능도 하였다. 재미 한국인들은 생일이나 축하잔치에 반드시 떡을 해서 나누어 먹으면서 자신들의 정체감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한인촌에 있는 한국인 대상 업종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한의사 · 침술 등이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보신용으로 한약을 널리 복용해 왔는데, 재미한국인들도 한국 전통의술인 한의학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한인촌에는 이처럼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 외에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도 많다. 미국인 대상 가게는 업종에 구별 없이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는 여러 점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객 대부분은 한인촌 남부에 거주하는 흑인들과 동부에 거주하는 멕시코인이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한인촌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율은 높은 편이다. 범죄 유형은 패싸움, 절도, 강도, 살인 등 다양하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에서는 상점들이 모두 한글 간판을 내걸고,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지장없을 만큼 한국어생활권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재미 한국인들에게 한인촌은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여기에는 한인회관을 비롯하여 한국어신문사 등 많은 공공기관이 있고, 한국인을 위한 서비스센터나 직업학교 등도 있다. 한인촌에는 기독교 교회가 100여 개, 불교사찰이 열 개 남짓 자리잡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이 유명한 이유는 한인들의 주거지라는 사실만은 아니다. 미국 사회에 발을 들여 놓는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몇 년간 열심히 일해서 밑천을 마련한 후 새 직장, 새 거주지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미 한국인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거쳐 가는 훈련장으로서의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은 전출입 인구가 상당히 유동적인 특징을 갖는다.
한편,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은 한국 문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한국 음식의 참맛을 즐기려면 한인촌의 한국식당을 찾아야 하는데, 구체적인 예로 ‘영빈관’을 들 수 있다. 한국식으로 건물을 짓기 위하여 목수까지 한국에서 데려다 지었다는 영빈관은 미국인이 고객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에서 한국 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대표적 계기는 ‘코리언 퍼레이드(Korean Parade)’, 즉 ‘한국의 날’ 행사이다. ‘한국의 날’ 행사는 1973년 올림픽가에 자리잡은 교포 업소 대표 10명이 조직한 한인촌 번영회에서 계획한 대외 사업으로, 1974년 11월 1일에 첫 행사가 치러진 이래 오늘날까지도 올림픽가 한인촌 번영회가 주관하고 있다.
1974년 이후 매년 거행되는 ‘한국의 날’ 행사에서는 개막식, 한국 문학의 향연, 우량아선발대회, 종합예술제, 문예콩쿠르, 사생대회, 윷놀이대회, 장기바둑대회, 한복패션소 등이 열리고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한국의 날’ 행사는 코리언 퍼레이드가 시작되면서 절정을 맞는다. 퍼레이드마다 그 해의 특별 주제가 채택되는데, 주로 미국 내 기타 소수민족들과의 화합과 친선을 도모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의 ‘한국의 날’ 행사는 동포들에게는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활짝 꽃피우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용기를 북돋워 민족적 정체성을 발휘하는 활력소를 제공해주며, 또한 한국 문화를 미국 사회에 소개하는 좋은 무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인종차별문제가 로스앤젤레스한인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사건으로 노출된 것이 1992년 5월에 있었던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의 흑인폭동이다.
이른바 ‘LA사건’의 발단은 한인과 전혀 관계 없는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이 고속도로 순찰 경찰에게 구타당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킹을 구타한 경찰이 무죄판결을 받자 분노한 흑인들이 시내에서 폭동을 일으켰는데 특히 한인촌에 진입하여 한인 가게를 약탈 · 방화 · 파괴하였다. 한인들은 이를 목격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당시 폭동으로 한인 1명이 숨졌으며 약 46명의 사상자, 그리고 방화와 약탈 등으로 약 2,280개의 한인 업소가 피해를 입어 수백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LA사건은 미국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흑백갈등의 유혈적 표출이었다.
이 사건 이후 점포를 상실한 일부 한인들은 미국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도 하였고, 이민1세와 이민2세가 의지하고 민족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1992년 5월 로스앤젤레스 한인촌 사건은 로스앤젤레스만이 아니라 미주 한인 전체의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2009년 현재 미국 내 한인 인구 추산치는 총 133만 5,973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내 가장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주는 캘리포니아로 전체 한인수의 30%에 해당하는 40만 9,412명이 거주하고, 그 다음으로 뉴욕(13만 4,759명), 뉴저지(8만 4,731명), 일리노이(6만 6,957명) 순이었다.
2011년 현재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재외동포는 217만 6,998명으로 집계되었다.
총체적 생활공간으로서의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은 일본인의 리틀도쿄(Little Tokyo)나 중국인의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미국 사회에서 자신들의 민족적 동질성을 과시하며 의의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한인 사회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미주 한인 이민 100년이 넘어섰고, 2012년 재외국민참정권 시대를 맞아 로스앤젤레스한인촌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