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에이치’는 지성(head)·덕성(heart)·근로(hand)·건강(health)의 뜻을 지닌 영어의 네 단어의 머리글자를 나타낸다. 2007년 제정한 「한국4에이치활동지원법」에 따르면 4에이치란 명석한 머리(Head, 지육), 충성스런 마음(Heart, 덕육), 부지런한 손(Hands, 노육) 및 건강한 몸(Health, 체육)이다.
미국에서는 10세부터 20세까지의 남녀 청소년을 회원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세부터 29세까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군복무를 마치고 영농후계라는 과제를 지닌 20대 후반 청년을 참여시키기 위한 유인책이기도 하다.
4에이치운동은 농촌 청소년들로 하여금 농사와 가정 또는 사회생활에서 한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높은 이상과 농사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학습하며 스스로 실천하여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서로 도우며 조직활동을 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4에이치활동지원법」에서는 대한민국 청소년의 4에이치활동을 지원하여 청소년의 인격을 도야하고 농심(農心)을 배양하며 창조적 미래세대로 육성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4에이치운동은 19세기 미국에서부터 부분적으로 전개되다가 1914년 미국 전역에 조직되었고, 그 뒤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는 1947년 3월에 도입하여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전개하다가 1979년 그 명칭과 조직체계를 대폭 개편하여 1988년부터 4-H회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4에이치운동은 1927년 당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를 통하여 처음 소개되었으나 크게 보급되지 못하였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광복 후였다. 1947년 미군정 시기 경기도지사 고문 앤더슨(Charles A. Anderson) 대령이 도지사·군수 및 도내 유지들을 통해 소개하여, 1948년부터 ‘흥농회(興農會)’·‘농촌청년구락부(農村靑年俱樂部)’ 등과 같은 명칭으로 조직되기 시작하였고, ‘경기도 농촌청년구락부연합회’가 결성되기까지 하였다.
1950년 6·25전쟁 직전에는 경기도 내 구락부수 1,900여 개, 회원 수 5만 명에 달하였다. 그 뒤 6·25전쟁으로 인하여 조직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1952년부터 당시 농림부와 내무부가 협력하여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보급하였고, ‘한국4H연맹’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1954년에는 ‘전국 4H구락부중앙위원회’가 민간 주도로 결성되었다. 1956년에는 농림부 및 각 도에 교도과를 두고 주로 4H구락부를 육성하는 농촌청소년 행정이 시작되었으며, 1957년부터는 새롭게 설치된 농사원과 군농촌교도소가 농촌청소년 지도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 농촌청소년을 지도하는 전담 지도사를 훈련·배치하게 되었다.
1962년 4월에는 농사원이 「농촌진흥법」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되고, 도에서는 농촌진흥원, 시·군에는 농촌지도소가 됨에 따라, 4에이치 사업은 중앙과 도 단위에서는 지도국의 청소년지도과, 시·군 단위에서는 지도과 청소년계가 4에이치 업무를 전담하기에 이르렀다.
1976년에는 4H운동 30주년 기념활동을 가진 바 있고, 1978년에는 농촌청소년을 새마을운동의 주요 인력으로 육성하고자 명칭을 ‘새마을청소년회’로 변경하였다가, 1989년에 다시 ‘4H회’로 변경하였다. 1988년 말 전국 32만명이 넘던 회원수는 농촌청소년 수의 격감과 함께 급속도로 감소하여, 1998년에는 회의 수 3,556개, 회원수 7만 4,689명이었다.
한국에서 4에이치운동은 농가나 부락에 대한 지원사업이 아니라 농촌의 청소년 지도사업을 목표로 부락 청소년층에서 자생적인 지도자를 키워내는 역할을 하였다. 4에이치운동은 농촌 발전에 뜻을 둔 대부분의 인사들이 참여해 왔고 많은 사회지도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영농과학화를 중심으로 농촌 발전을 이끄는 주역을 맡아왔다.
1970년대 농촌 발전을 이끌어 온 새마을지도자 대부분이 4에이치 클럽에서 연마된 지도력을 토대로 하였으며, 특히 영농기계화를 위하여 이들 남녀 청소년 중 다수가 4에이치 농기계 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농촌청소년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영농후계자가 없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농촌청소년들의 영농 정착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의 하나로서, 농업계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조직된 ‘학생영농회(FFK)’의 육성과 함께 이들 4에이치 회원에 대한 사회교육적 접근이 중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4에이치 회원이 중·고등학생들이 많은 반면 실질적으로 농촌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할만한 청장년 4에이치 회원이 매우 적어서, 읍·면 단위만이 아니라 도시 활동을 강화시키는 지역 청소년 지도자 육성이 강화되고 있다.
「학교4-H의 활성화 방안」(김진모 외, 『농업교육과 인적자원개발』3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