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구봉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 사마시에 합격, 태학(太學)에 있을 때 장의(掌議)의 신분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광해군을 간하기 위하여 「전은소(全恩疏)」를 올리고, 석고대죄한 지 7일 만에 낙향하였다. 인조반정 뒤에 다시 태학으로 돌아왔다.
평생에 『논어』와 『대학』을 읽어 성(誠)과 경(敬)으로써 일신의 수양지침을 삼았고, 성리학은 정구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하였다. 정경세(鄭經世) · 이윤우(李潤雨) 등과 교유하였다. 울산 덕양사(德陽祠)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구봉문집(九峯文集)』 4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구봉문집(九峯文集)』
- 『만력31년계묘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一年癸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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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만력31년계묘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一年癸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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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김수인 저술 : 『구봉문집(九峯文集)』 (국립중앙도서관 古3648-10-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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