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도승지, 호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문제(服制問題)로 남인에게 몰려 부처될 뻔하였고, 그 해 8월 현종이 죽자 양사(兩司)의 탄핵으로 춘천에 유배되었다가 이듬 해 풀려나와 양주로 물러가 살았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어 다시 영의정에 올랐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집권하자 장기(長鬐)에 유배되어 이듬 해 배소에서 죽었다.
김수흥은 송시열(宋時烈)을 마음의 스승으로 존경하여 그의 뜻에 따랐고, 『주자대전(朱子大全)』 · 『어류(語類)』 등을 탐독하였다. 역대의 왕에게 시폐소(時弊疏)를 올려 백성의 편에서 정치하기를 힘쓰고 정치의 혁신을 여러 번 건의했다. 저서로는 『퇴우당집(退憂堂集)』 5책이 전해지고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송자대전(宋子大全)』
- 『숙종실록(肅宗實錄)』
- 『도암집(陶庵集)』
- 『퇴우당집(退憂堂集)』
- 『현종실록(顯宗實錄)』
- 『무자식년사마방목(戊子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22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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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무자식년사마방목(戊子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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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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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장기 유배 : 『숙종실록』 22권, 1690년(숙종 16) 10월 12일. "전 영의정 김수흥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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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숙종실록』 22권, 1690년(숙종 16) 10월 12일. "전 영의정 김수흥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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