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조도관,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623년(인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조도관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조도관,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천얼출신으로 전라감사이던 이창후(李昌厚)의 반인(伴人: 수종인)이었는데, 광해군 때의 창덕궁 영조(營造)에 세금 수집관으로 발탁되어 관계에 진출하였다.

처음에는 별장의 직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공사에 필요한 자재 수집에 탁월한 재능을 보임으로써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1621년(광해군 13)에는 조도관(調度官: 민간에서 물자를 강제 징발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직)에 임명되고 곧 이어 가선대부에 올랐다.

당시 창덕궁 영조조도관(營造調度官)에 천얼출신이 많이 임명되었지만, 당상관에까지 오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조도사라는 직명이 특별히 부여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관할 지역인 황해도에서는 김순의 가렴주구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였다. 인조반정 후 황해도에서 효시되었는데,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나아가 육신을 도륙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주석

  • 주1

    : 가선대부 임명 : 『광해군일기[중초본]』 58권, 1621년(광해 13) 9월 2일. "황연 조도관 김순이 가선대부에 올랐으니 조도사가 칭하기로 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