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포도대장, 지훈련원사, 비변사제조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우경(虞卿)
이칭
평양군(平陽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89년(성종 20)
사망 연도
1574년(선조 7)
본관
순천(順天)
주요 관직
지훈련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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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포도대장, 지훈련원사, 비변사제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우경(虞卿).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김승주(金承霔)의 후손이며,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 김원석(金元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선공감정 김약균(金若鈞)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판서 김수홍(金粹洪)이며,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郞) 우(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門蔭)으로 군관이 된 뒤, 1516년(중종 11) 무과 중시(重試)에 합격해 선전관(宣傳官)에 올랐다. 1523년 중종이 여연(閭延) 등 사군에 몰래 들어와 흩어져 살고 있는 호인(胡人)을 내쫓도록 명하자 이산군수(理山郡守)로서 행군할 도로를 심사하였다.

이듬해 행군할 때 선봉이 되어 호인의 소굴을 50여 곳이나 불지르고 철거시켰다. 귀환할 즈음 적의 기습으로 패배해 여러 장수들은 유배되었지만, 김순고는 전공이 있어 처벌을 면하였다.

1537년에는 경상우병사가 되었으며, 이후 조정에 무재(武才)가 알려져 병조에 의해 계속 장수가당인(將帥可當人)으로 천거되었다. 1542년 평안병사를 거쳐 한성부우윤을 지냈으며, 154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경상좌수사가 되었다. 이듬해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으며, 명종 즉위 이후 윤원로(尹元老)의 탄핵에 가담하기도 했고, 한성부좌윤·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552년(명종 7) 함경도병사로서 경흥과 잉거도(仍居島) 사이에 진(鎭)을 설치한 것이 문제가 되어 윤원형(尹元衡)의 탄핵으로 강계에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기전(畿甸)에 수군이 설립되자 1556년 경기수군절도사로 복직되었고, 2년 뒤에는 경강주사장(京江舟師將)을 지냈으며, 포도대장·지훈련원사·비변사제조를 역임하였다.

수군의 전비(戰備)에 관심이 높아 최초로 전선(戰船)의 앞뒤에 포(砲)를 비치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청강집(淸江集)』
『우복집(愚伏集)』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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