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고, 현량과에 피천된 효자.
이칭
  • 남정(嵐亭)
  • 정양(廷揚)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덕(豊德)
  • 사망 연도1558년(명종 1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472년(성종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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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고, 현량과에 피천된 효자.

개설

본관은 풍덕(豊德). 자는 정양(廷揚), 호는 남정(嵐亭). 할아버지는 사직(司直) 김효신(金孝信)이고, 아버지는 김의(金顗)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승중(曺承重)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金山)에 거주하면서 『가례(家禮)』에 의한 상례(喪禮)를 철저히 준행하는 한편, 효행이 뛰어나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로 인해 1518년(중종 13)에는 유학(幼學)으로 경상도관찰사 김안국(金安國)에 의해 현량과(賢良科)에 피천(被薦)되었으며, 이듬해 다시 거상(居喪)의 예를 다하였음이 조정에 알려져 금산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시창의 효절(孝節)은 『삼강록(三綱錄)』에 수록되었으며, 죽은 뒤 참봉에 추증됨과 아울러 황간(黃澗)의 모현서원(慕賢書院)과 금산의 경렴서원(景濂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효는 효절(孝節)이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전고대방(典故大方)』

주석

  • 주1

    : 김안국의 천거 : 『중종실록』 32권, 1518년(중종 13) 3월 26일.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유학 노필·노우명·유자방·박계리 등 다수를 천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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