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6년(헌강왕 2)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의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에는 고상(高湘)이 고시관이 되어 신라의 박인범(朴仁範)과 함께 두 사람을 합격시킨 데 대해 감사하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문성왕 때 김운경(金雲卿)이 처음으로 빈공과에 합격한 이래 당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등과한 자가 58인이고, 오대(五代)에는 32인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저명한 자로서는 최이정(崔利貞) 등 십수인이다.
그 중에서도 그는 예(禮)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신라와 후백제의 시랑(侍郎), 고려 때 학사(學士)인 김악(金渥, 金樂·金岳)과는 동명이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