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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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인물/전통 인물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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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내용

876년(헌강왕 2)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의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에는 고상(高湘)이 고시관이 되어 신라의 박인범(朴仁範)과 함께 두 사람을 합격시킨 데 대해 감사하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문성왕 때 김운경(金雲卿)이 처음으로 빈공과에 합격한 이래 당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등과한 자가 58인이고, 오대(五代)에는 32인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저명한 자로서는 최이정(崔利貞) 등 십수인이다.

그 중에서도 그는 예(禮)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신라와 후백제의 시랑(侍郎), 고려 때 학사(學士)인 김악(金渥, 金樂·金岳)과는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동사강목(東史綱目)』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최치원,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72)
「신라하대(新羅下代) 빈공급제자(賓貢及第者)의 출현(出現)과 나당문인(羅唐文人)의 교환(交驩)」(이기동, 『전해종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0)
「나말여초(羅末麗初) 근시기구(近侍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 『역사학보(歷史學報)』 77,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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