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좌의정, 약방도제조,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휴암(晩休庵)
  • 이민(而敏), 이민(而民)
  • 시호충정(忠正)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753년(영조 2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중추부사
  • 출생 연도1694년(숙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좌의정, 약방도제조,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민(而敏, 而民), 호는 만휴암(晩休庵). 할아버지는 김징(金澄)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김유(金楺)이며, 어머니는 송박(宋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6년에 진사가 되었고, 1727년(영조 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그 뒤 『숙종실록(肅宗實錄)』 보충의 잘못을 논하다가 유배당하였으나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1731년 정언(正言)이 되었다.

지평(持平) · 교리(校理) · 수찬(修撰)을 거쳐 1736년 승지, 1740년 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병조참판 · 예조참판을 거쳐 1742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744년 공조 · 호조 · 병조의 판서가 되었다.

1746년 우참찬, 이듬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1749년 우의정, 그 뒤 좌의정이 되었다. 1752년 약방도제조(藥房都提調)가 되었는데, 왕세손이 죽자 파직당하였으나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다시 기용되었다. 한때 형 김취로(金取魯), 아우 김상로(金相魯)와 함께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세도를 부리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병오식년사마방목(丙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70])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병오식년사마방목(丙午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70])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사건의 전말 : 『영조실록』 13권, 1727년(영조 3) 9월 25일. "승문원 정자 윤득징 등이 《실록》을 보궐하려는 무리의 사심을 아뢰니 이들을 정배시키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