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년(문종 8) 급사중(給事中)으로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태자를 책봉한 사실을 알렸다. 1061년 어사대부를 거쳐 1065년 상서우복야로서 전중소감(殿中少監) 서정(徐靖)과 함께 거란에 들어가 책명(冊命)을 사례하였다.
최충이 과거 시험관을 맡았을 때 합격한 14명 중에 한 명으로, 김양지는 학사가 되었다. 당시 합격자 중 고위직이 많아서 사람들은 이들을 상서방(尙書牓)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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