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1년(원성왕 7) 내성시랑(內省侍郞)으로서 삼중아찬(三重阿飡)이 되었다. 특히, 그가 삼중아찬이라는 관등을 가졌다는 기사는 중위제(重位制)에 의한 승진기사로서는 유일한 문헌기록이다.
이는 신라시대 중위의 존재를 알려주는 좋은 예인데, 신분이 육두품(六頭品)으로 골품제도의 규정이 엄격함을 알려주는 예로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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