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윤,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감찰 · 형조좌랑을 거쳐, 1428년(세종 10) 형조도관정랑(刑曹都官正郎)에 올랐으나, 형옥 관리를 잘못 처리하였다고 하여 고신(告身: 관리로 임명된 사람에게 주는 사령장)이 회수되고 귀양을 갔다.
그 뒤 관직에 복귀되어 지평(持平)을 지내고, 1442년 세종이 세자에게 정사를 대리시키고자 둔 첨사원(詹事院)의 동첨사(同詹事)가 되어 출납을 주관하여 세종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조의 관원과 틈이 생겨 부평현령으로 좌천되었는데, 이 때 극심한 흉년을 만난 백성을 잘 진휼한 공으로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에 발탁되고, 이어서 상호군(上護軍)에 올라 지형조사(知刑曹事)를 겸하였다.
그 뒤 호조 · 예조 · 형조의 참의를 거쳐 1452년(문종 2)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공조참판 · 대사헌 · 한성부윤을 역임하고, 다시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관찰사 · 경상도관찰사로서 선정을 폈다.
그 뒤 대사헌 · 한성부윤을 재차 역임하고, 1467년(세조 13)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로서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성품이 단아하고 근실하여 공무에 충실하였으며, 언행을 함에 있어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 시호는 대경(戴敬)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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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및 신상 정보 : 『성종실록』 12권, 1471년(성종 2) 10월 7일. "행 중추부 지사 김연지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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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마시 급제 : 『성종실록』 12권, 성종 2년(1471)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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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성종실록』 12권, 1471년(성종 2) 10월 7일. "행 중추부 지사 김연지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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