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삼당(三塘)
  • 영지(英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528년(중종 2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부승지|강원도관찰사
  • 출생 연도1475년(성종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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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영지(英之), 호는 삼당(三塘). 할아버지는 김계권(金係權)이고, 아버지는 장령 김영수(金英銖)이며, 어머니는 김박(金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연산군 12) 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로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이듬해에는 대교(待敎)에 올라 김흠조(金欽祖) · 정충량(鄭忠樑) 등과 더불어 사신의 정도를 내세우며 사초문제(史草問題)로 빚어졌던 무오사화로 해를 입은 자들의 억울한 죄를 회복시켜 줄 것을 상소하였다.

그 뒤 수찬(修撰) · 정언(正言) · 교리(校理) · 장령(掌令) 등 청요직을 지냈으며, 1518년 (중종 13)에는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가 곧 김제군수로 외직에 나갔다.

1522년에는 다시 장령이 되었으며, 이어 동부승지를 거쳐 1527년에는 강원도관찰사에 보임되었으나 대간의 탄핵으로 곧 개체되었다. 조광조 등 중종 때의 사림파와 언로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등 정치적 성격을 달리한 인물이었다. 문집으로 『삼당집(三塘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상소 내용 : 『중종실록』 3권, 1507년(중종 2) 6월 10일. "사국에 관한 예문관 봉교 김흠조·정충량 등의 상소"

  • 주3

    : 김영 저술 : 『삼당집(三塘集)』 (국립중앙도서관 한古朝46-가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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