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수찬(修撰) · 정언(正言) · 교리(校理) · 장령(掌令) 등 청요직을 지냈으며, 1518년 (중종 13)에는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가 곧 김제군수로 외직에 나갔다.
1522년에는 다시 장령이 되었으며, 이어 동부승지를 거쳐 1527년에는 강원도관찰사에 보임되었으나 대간의 탄핵으로 곧 개체되었다. 조광조 등 중종 때의 사림파와 언로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등 정치적 성격을 달리한 인물이었다. 문집으로 『삼당집(三塘集)』이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상소 내용 : 『중종실록』 3권, 1507년(중종 2) 6월 10일. "사국에 관한 예문관 봉교 김흠조·정충량 등의 상소"
-
주3
: 김영 저술 : 『삼당집(三塘集)』 (국립중앙도서관 한古朝46-가173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