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수군절제사, 지삼군부사, 참판승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중요한 실책을 범해 1397년 파직이 되어 옹진(甕津)으로 유배, 수군에 충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종 1)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04년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로 있을 때에 왜선 1척을 노획하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으로, 태종으로부터 표리(表裏: 겉과 속의 옷감)가 하사되었다. 의성군(義城君)으로 봉작되고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양소(襄昭)이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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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기우도 수군절제사 임명 : 『태조실록』 6권, 1394년(태조 3) 6월 1일. "김영렬을 경기우도 수군 첨절제사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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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좌명공신 책록 : 『태종실록』 1권, 1401년(태종 1) 1월 15일. "이저·이거이 등에게 좌명 공신의 훈호를 내리는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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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태종실록』 8권, 1404년(태종 4) 12월 1일. "의성군 김영렬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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