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렬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독립단에서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고종 30)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안북도 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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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독립단에서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벽동 출신. 1923년 8월 13일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근거지를 둔 독립단원 김익봉(金翊奉)·김흥렬(金興烈)·한서봉(韓瑞奉) 등의 권유에 따라 양학준(楊學俊)·김용필(金龍弼)·김기열(金基烈) 등과 무장투쟁에 가담하였다.

이들과 함께 8월 14일 장총으로 무장한 후 벽동군 운시면(雲時面) 주재소를 습격하여 주재소 순사를 사살하고 주재소와 숙소에 불을 질렀다.

이어 대평면(大平面)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고, 독립운동가의 도피처를 마련하다가 체포되어 1924년 1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징역 8년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 12·13(국가보훈처, 1996)
집필자
조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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