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이명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이명 추대 세력에 대한 목호룡의 고변으로 인해 처형된 문신.
이칭
  • 고송재(孤松齋)
  • 덕우(德雨)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인옥사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722년(경종 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일기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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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이명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이명 추대 세력에 대한 목호룡의 고변으로 인해 처형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우(德雨), 호는 고송헌(高松軒). 할아버지는 대제학 김만중(金萬重)이고, 좌의정 이이명(李頤命)의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숙종이 사류(士類)들을 대거 등용할 때, 이이명의 천거로 벼슬길에 올랐다.

1722년 노론 사대신과 그 일당 60여 인이 경종을 시해하고, 이이명을 추대하려 한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이천기(李天紀) 등과 함께 하옥, 국문을 받다가 고문에 의해 치사되었다. 1802년(순조 2)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가 풀림)되어 집의(執義)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호보(號譜)』

  • - 『당의통략(黨議通略)』

  • - 『한국당쟁사』(성낙훈, 한국문화사대계, 1965)

주석

  • 주1

    : 김용택의 심문 내용 : 『경종실록』 7권, 1722년(경종 2) 4월 13일. "김용택의 공초"

  • 주2

    : 증직 근거 : 『순조실록』 4권, 1802년(순조 2) 4월 16일. "신축 임인년에 죽은 5사람을 모두 증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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