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개항기 때,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이칭
  • 이칭고광순(高光珣·高光詢), 고광욱(高光旭)
  • 녹천(鹿川)
  • 서백(瑞伯)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을미사변
  • 본관장흥(長興)
  • 사망 연도1907년(고종 4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8년(헌종 14)
  • 출생지전라남도 담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8일
구례 고광순 순절비 정측면 미디어 정보

구례 고광순 순절비 정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때,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 초명은 고광욱(高光旭) 또는 고광순(高光珣 · 高光詢). 자는 서백(瑞伯), 호는 녹천(鹿川). 전라남도 담양 출신. 생부는 고정상(高鼎相), 양부는 고경주(高慶柱), 항일투사 기산도(奇山度)가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각 읍에 격문을 띄우고, 기우만(奇宇萬)과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나주를 본영으로 의병을 불러모으자 일본군이 나주로 집결하므로 광주(光州)로 옮겼다.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북진하던 중 선유사(宣諭使)의 권고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1906년 윤4월 최익현(崔益鉉)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고제량(高濟亮)과 함께 그를 찾아 순창에 이르렀으나, 최익현은 이미 패전하여 서울로 압송된 뒤였다. 다시 기우만 · 백낙구(白樂九)와 모사하였으나, 그들도 곧 붙잡혔다.

1907년 1월 24일 저산(猪山)의 제각(祭閣)에서 고제량 · 고광훈(高光薰) · 고광채(高光彩) 등 족친들과 윤영기(尹泳淇) · 박기덕(朴基德)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12월 말 남원의 양한규(梁漢圭)와 남원성을 공격, 관군과 접전을 벌이던 중 양한규가 죽고 남원의진이 붕괴하여 퇴진하였다. 1907년 5월에는 능주(綾州), 8월에는 동복(同福)을 습격하였다.

그 뒤 지리산 문수암(文殊庵)을 거점으로 활약하던 김동신(金東臣)과 연합작전을 구상, 지리산으로 집결하였다. 그 동안 고광순의 종가는 적의 습격으로 사당만 화를 면하였을 뿐 피해가 컸다.

8월 구례 연곡사(燕谷寺)로 가서 화개동(花開洞)과 문수암 일대를 거점으로 대원들을 머무르게 한 뒤, 군대를 훈련시키고 군량을 보충하며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의기를 북돋웠다.

그 뒤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9월 적의 연곡사 복멸작전에 의한 야습을 받아 부장인 고제량을 비롯, 주요 장졸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의재실기(義齋實紀)』

  • - 『매천야록(梅泉野錄)』

  • - 「한말 고광순(高光洵)의 의병활동과 지리산근거지론(智異山根據地論)」(홍영기, 『역사학연구』47, 2012)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 2·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 『朝鮮獨立運動』 Ⅰ(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주석

  • 주1

    : 조선 고종 32년(1895)에 일본의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 황후를 죽인 사건.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등이 친러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켰으며, 이로 인하여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였다. 우리말샘

  • 주2

    :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우리말샘

  • 주3

    : 나라에 병란(兵亂)이 있을 때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백성에게 훈유(訓諭)를 알리던 임시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4

    : 대한 제국 광무 9년(1905)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 고종 황제가 끝까지 재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 무효의 조약이다. 우리말샘

  • 주5

    : 조선 후기의 의병장(?~1907). 광양 백운산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고, 석방된 후 융희 1년(1907)에 재차 의병을 모으려 하였으나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우리말샘

  • 주6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읍성. 높이는 약 4미터이고 길이는 2.4km가 넘는다. 조선 시대 읍성의 전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성내의 도로는 바둑판 모양이다. 사적 정식 명칭은 ‘남원 읍성’이다. 우리말샘

  • 주7

    :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데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의 다섯 등급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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