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1906년 윤4월 최익현(崔益鉉)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고제량(高濟亮)과 함께 그를 찾아 순창에 이르렀으나, 최익현은 이미 패전하여 서울로 압송된 뒤였다. 다시 기우만 · 백낙구(白樂九)와 모사하였으나, 그들도 곧 붙잡혔다.
1907년 1월 24일 저산(猪山)의 제각(祭閣)에서 고제량 · 고광훈(高光薰) · 고광채(高光彩) 등 족친들과 윤영기(尹泳淇) · 박기덕(朴基德)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12월 말 남원의 양한규(梁漢圭)와 남원성을 공격, 관군과 접전을 벌이던 중 양한규가 죽고 남원의진이 붕괴하여 퇴진하였다. 1907년 5월에는 능주(綾州), 8월에는 동복(同福)을 습격하였다.
그 뒤 지리산 문수암(文殊庵)을 거점으로 활약하던 김동신(金東臣)과 연합작전을 구상, 지리산으로 집결하였다. 그 동안 고광순의 종가는 적의 습격으로 사당만 화를 면하였을 뿐 피해가 컸다.
8월 구례 연곡사(燕谷寺)로 가서 화개동(花開洞)과 문수암 일대를 거점으로 대원들을 머무르게 한 뒤, 군대를 훈련시키고 군량을 보충하며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의기를 북돋웠다.
그 뒤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9월 적의 연곡사 복멸작전에 의한 야습을 받아 부장인 고제량을 비롯, 주요 장졸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의재실기(義齋實紀)』
- 『매천야록(梅泉野錄)』
- 「한말 고광순(高光洵)의 의병활동과 지리산근거지론(智異山根據地論)」(홍영기, 『역사학연구』47, 2012)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 2·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朝鮮獨立運動』 Ⅰ(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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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고종 32년(1895)에 일본의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 황후를 죽인 사건.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등이 친러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켰으며, 이로 인하여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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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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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나라에 병란(兵亂)이 있을 때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백성에게 훈유(訓諭)를 알리던 임시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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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대한 제국 광무 9년(1905)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 고종 황제가 끝까지 재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 무효의 조약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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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후기의 의병장(?~1907). 광양 백운산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고, 석방된 후 융희 1년(1907)에 재차 의병을 모으려 하였으나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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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읍성. 높이는 약 4미터이고 길이는 2.4km가 넘는다. 조선 시대 읍성의 전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성내의 도로는 바둑판 모양이다. 사적 정식 명칭은 ‘남원 읍성’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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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데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의 다섯 등급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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