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 출신. 1894년 동학에 입교하여 보부상 접주로 종사하였으며, 군대 해산 뒤 해주·평산 등지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강춘삼의 부대는 박기섭(朴箕燮) 의병 부대의 중대장인 심노술(沈魯述)이 거느린 의병들과 더불어 평산군 서쪽부터 해주군 사이에 걸쳐서 크게 활약하여 전과를 거두었다.
강춘삼이 활약하던 황해도 일대 의병의 수는 600∼700명에 달하였으며, 다시 여러 개의 소부대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 주력 부대는 박기섭의 의진이었으므로, 상호 연결관계를 맺고 활약하였다.
1910년 해주 근처 여묵(餘默)의 원야(原野)에서 적에게 크게 타격을 주었고, 또 그 해 가을 해주 동촌(東村) 청단시(靑丹市) 쟈라기벌판 전투에서 대접전을 벌여 공훈을 세웠다.
그 뒤 1913년 5월 일본 헌병의 불의의 습격을 받고 붙잡혀 청단시 학곡(鶴谷)에서 총살당하였다.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