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심남일 의진에서 후군장으로 활약하다 투옥되었으며, 출감 후 나주군의 독립운동에 은밀히 참여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해 6월 능주전투에서, 10월 해남성내에서 3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적과 접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09년 5월 보성군 천동에 주둔, 보성의병장 안규홍(安圭洪)에게 통지하여 석호산(石虎山)에서 회동, 서로 협조할 것을 의논하였다.
그 뒤 일본군 50여 명과 접전 끝에 적 5명을 사살하였다. 그 해 8월 심남일 의진이 석정(石井)에서 적과 접전할 때, 첩자가 능주 일본헌병대에 밀통함으로써 적의 야습을 받아 많은 의병을 잃었다. 그 뒤 칙령에 의하여 의병을 해산하고 풍치(風峙)에 피신해 있던 중 붙잡혔다.
1910년 4월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투옥중, 일본관헌의 고문으로 발목 불구가 되었다. 출감 후 나주군의 독립운동에 은밀히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홍영기, 일조각, 2004)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홍순권,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 『독립운동사자료집』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조선독립운동』Ⅰ(김정명 편, 원서방,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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