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폐위와 군대해산 후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게 되자, 김동신은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산에서 기우만(奇宇萬) · 고광순(高光洵)과 더불어 기병할 것을 의논하고 인근 부락으로 통문을 돌려 의병을 소모(召募)하고 군기(軍器)를 모아갔다.
이후 9월경 8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순창(淳昌)의 우편취급소와 경무고문분파소(警務顧問分派所)를 습격하여 이곳을 점령한 후 관물을 노획하였고, 남원 모래사장에서 일본군과 격전하여 2명을 사살하고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이후 9월 중순경 용담 내원사(內源寺) 일대에서 활약하던 이석용(李錫庸)의 의진과 합진하였으나, 통수권과 전략 등의 문제로 공격해 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자 곧 해진하였다.
1908년 2월 약 1백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전라북도 용담군 구랑(九郞)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이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전라북도 무주군 황천면 삼곡리에서 일본군과 다시 교전하였다. 3월 6일 스스로 ‘삼남의병대장’이라 칭하고, 8백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경상남도 거창군 매학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이처럼 전라도 ·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병을 얻어 고향인 충청남도 회덕군 탄동면 덕진동에서 치료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탐지되어 1908년 6월에 체포되었다. 8월 1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내란죄로 종신유형을 선고받고 다년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기려수필(騎驢隨筆)』
단행본
- 『독립운동사자료집 1권』(국가보훈처)
- 『독립운동사자료집 3권』(국가보훈처)
-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일조각, 2004)
논문
- 홍영기, 「舊韓末 金東臣 義兵에 대한 一考察」(『한국학보』 56, 일지사, 1989)
- 최근무, 「義兵大將 金東臣의 思想에 관한 硏究」(『논문집』 제19집, 전주교육대학, 1983)
기타 자료
- 『대전분서의 체포 및 청취서』(1908. 6)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