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규 ()

고전시가
인물
조선후기 『청구가요』 등에 주요 작품이 실려 있는 가객.
이칭
성백(聖伯)
백도(伯道)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1년(숙종 17)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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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후기 『청구가요』 등에 주요 작품이 실려 있는 가객.
생애와 활동사항

자는 성백(聖伯). 호는 백도(伯道). 『청구가요(靑邱歌謠)』의 김우규 작품 후서에서 김수장(金壽長)은 김우규가 자기보다 한 해 뒤인 신미년(1691)에 태어났으며(聖伯年令辛未我庚午), 당시에 그가 생존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此輩已沒 只有聖伯與我矣). 김수장이 이 글을 쓴 해가 1764년(영조 40) 갑신(甲申)년이니, 그 때에 김수장은 75세이고 김우규는 74세이다. 이로 보아 김우규는 74세 이후까지 살았음이 확실하다. 어릴 때부터 호방하고 창곡에 뛰어나 박상건(朴尙健)에게 노래를 배운 뒤, 세상에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김수장과 친분이 두터워 그가 경영하던 노가재(老歌齋)에 자주 드나들며, 여러 가우들과 풍류를 즐겼는데,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에도 그의 이름이 실릴 정도로 당대의 명창이었다.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으나,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의 작자목록에 ‘숙종조 서리(書吏)’로 소개되어 있다. 더불어 『악부(樂府)』(서울대본)에도 김우규를 ‘숙종조 서원(書員)’이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김수장과 같은 서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홍씨본(洪氏本) 『청구영언』에는 한산인(閒散人) 항목에 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로써 그의 직업생활은 한때의 일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여항인으로서 한산한 생활 속에서 풍류를 즐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청구가요』에 11수가 실려 있고, 그밖에 가람본 『청구영언』에 4수, 『병와가곡집』에 2수가 실려 있어 모두 17수의 작품이 전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널리 유포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17수 가운데서 11수가 단일가집에만 수록되어 있으며(청구가요 6수, 가람본 청구영언 3수, 병와가곡집 2수), 나머지 6수도 『청구가요』를 비롯한 몇 개의 시조집에만 나타나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은 강호나 전원에서의 한정(閑情)을 내용으로 한 것이 많으며, 대체로 평이한 소재를 무난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어서 특출한 것을 볼 수 없다. 장시조 작품이 한 수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하다.

참고문헌

『고시조론』(최동원, 삼영사, 1980)
『청구가요』(김삼불, 교주본 해동가요, 정음사, 1950)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조윤제, 박문출판사,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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