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목은 ‘국치비가(國恥悲歌)’이며, 작자의 문집인 『송암유고(松巖遺稿)』에 실려 있다. 제작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작품의 소재인 병자호란의 국치와 이정환의 사망 연대로 보아 1636(인조 14)에서 1673(현종 14) 사이로 추정된다.
병자호란의 국치(國恥)를 통분히 여겨 지은 연시조로 모두 10수이다. 첫째 수는 한밤중에 꿈을 깨어 혼자 일어나 청(淸)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학가선용(鶴駕仙容)을 만나고 온 이야기의 술회로 시작된다.
여섯째 수에서는 조정에는 무신(武臣)도 많건만 화친(和親)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되물어 안타까운 마음을, 마지막 열번째 수에서는 “이거사 어린 거사 잡말 마라스라/칠실(漆室)의 비가(悲歌)를 뉘라셔 슬퍼하리/어듸서 탁주(濁酒) 한잔 얻어 이 실람 풀가 하노라.”라 하여 국치(國恥)의 비분강개를 꾸밈없는 직선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각 수의 뒤에는 자신의 한역시(漢譯詩)를 붙였는데 한결같이 5언 6구의 직역시(直譯詩)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송암유고』에 전할 뿐, 다른 시조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이로 보아 이 작품이 가창을 통해서는 유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을 내용으로 한 대표적인 시조작품이며, 특히 연시조 형식으로는 이 작품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