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점석(點錫). 이월하(李月河)를 사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오랫동안 봉원사(奉元寺)의 주지로 있었다. 이월하의 전통을 계승하여 짓소리를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1968년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지정자료조사차 봉원사에서 행한 영산재(靈山齋)에서 범패승들의 지휘자격인 장부(丈夫)와 재의 감독관인 유나(維那)로서 크게 이바지하였다.
짓소리 녹음을 위하여 10여명의 어장(魚丈 : 범패를 가르치는 승려)들을 모아 기억을 되살리며 다른 어장들이 부르는 짓소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였다.
만년에는 불행히도 몸이 약하여 제자를 양성할 수 없어서 대가 끊기고 말았으며, 봉원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그가 부른 영산재 전바탕 142곡과 짓소리 13곡의 녹음테이프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