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출생. 처음에 김창환(金昌煥)에게서 3년간 판소리를 익혔으나, 성량이 부족하고 음색이 좋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독공(獨工)을 하여 가객으로 성공하였다.
그뒤, 1938년에 조선성악연구회에 참가하여 송만갑(宋萬甲)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 1942년에는 조선창극단에 입단하면서 창극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차츰 이름을 떨쳤다.
1948년에는 국극단에 참가하였고 1952년에는 국악사에서 창극연기로 이름이 알려졌다. 창극에서는 노역(老役)을 잘하였다고 한다. 그는 판소리 명창이고 창극 명인이었으며 명고수이고 설장고에도 능하였다. 일찍 사망하여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