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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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덕궁 대조전 등을 신축한 건축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0년(고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정동 (목원대학, 건축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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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창덕궁 대조전 등을 신축한 건축가.

내용

전통건축과 신건축시대의 접점에 최후까지 남아 있던 건축가로서, 건축계의 선구자 심의석(沈宜錫)을 이은 세대이다.

1904년에 내부(內部) 철도국의 서북철도국장으로 근무하다가, 궁내부(宮內府)영선사(營繕司)의 장을 거쳐 1910년 한일합방 때까지 내장원(內藏院) 토목과장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1937년까지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건축 분야 일을 맡아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순종의 거처였던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을 새로 지을 때 큰 역할을 하였는데, 대조전은 1917년 11월 중순, 원인 모를 불이 나 타버린 것을 다시 공사하여 1920년 10월 25일 준공하였다.

대조전은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을 헐어 다시 지었는데, 이 때 일부 내부 시설을 서양식으로 현대화하여 목욕탕과 이발관을 만들고 수난로(水煖爐: 스팀장치)도 설치하여 이전 건축물과는 다른 근대화된 전통 건축물이 되었다.

대조전으로 이사하던 날 희정당(熙政堂)에서는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순종은 건축기사였던 김윤구를 비롯하여 건축을 맡았던 사람들에게 돈화문(敦化門)을 새겨 넣은 은화병을 하사하였다. 또한 이 해에 조선건축회 평의원으로 있으면서 조선건축회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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