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북한 각 지역에는 공산주의청년동맹을 비롯한 여러 청년단체들이 조직되었다. 1946년 1월 17일 이들 단체가 통합되어 유일한 청년단체로 발족한 것이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이다.
1951년 1월 형식적으로 남북민주청년동맹(약칭 민청)통합과정을 거쳐 1964년 5월 12일 제5차대회에서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약칭 사로청)으로 명칭을 바뀌었다. 사로청 창립 50주년을 맞아 1996년 1월 19일 사로청 대표자회의에서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약칭 청년동맹)으로 개칭하였다. 2021년 4월 개최된 청년동맹 제10차 회의에서 명칭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사로청 기관지 제호(題號)를 ‘로동청년’에서 ‘청년전위’로 변경한 데 이어 종래의 ‘위원장’ 대신 ‘제1비서’직을 두고, 도 · 시 · 군 등 각급 조직에 비서와 부비서 직제를 신설하는 등 직제를 신설하는 등 직제를 개편하였다.
청년동맹은 1998년 1월 25일 제8기 제14차 전원회의를 열고 이일환을 1비서로 선거하였다. 한편 1986년 8월부터 사로청 위원장, 청년동맹 · 비서로 일해 온 최용해(崔龍海)는 신병관계로 해임했다고 밝혔다.
청년동맹은 행정단위 · 생산단위 · 각급학교 · 군(軍) 단위로 각급 조직이 있으며, 만 14세부터 30세까지의 청소년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다.
조선직업총동맹(맹원 160만명) · 조선농업근로자동맹(맹원 130만명) · 조선민주여성동맹(맹원 20만명) 등과 함께 4대 근로단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맹원수 500만 명으로 가장 큰 규모인 청년동맹은 “우리의 혁명과업을 직접 계승하는 청년들의 혁명적 조직이며 당의 전투적 후비대(後備隊)이다(노동당 규약 제9장 56조)”라고 규정, 중요성을 명백히 하고 있다.
청년동맹은 당의 노선과 정책을 옹호하고 이를 대중에게 침투시키는 선봉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당의 후비대로서 군대 · 공장 · 기업소 및 농어촌에서 당의 지주역할을 하면서 예비당원을 양성하고 경제계획의 조기완수를 위한 노력지원에 앞장서는 등 김정일(金正日)을 옹호 보위하는 전투조직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