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8년(원종 9) 임연(林衍)이 권신 김준(金俊)을 살해할 때 그 모의에 가담하여 아우 김자후(金子厚)로 하여금 김준의 아우 김충(金忠)을 죽이고 그 일당들은 해산하게 하였으며, 그 공으로 벼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 세자 왕심(王諶: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다녀온 뒤 대장이 되었다. 1277년(충렬왕 3)에 친종장군(親從將軍)이 되어 방수군(防守軍)을 인솔하고 탐라에 부임함으로써 환관으로는 처음으로 지방에 출사(出使)하였다.
이듬해 장군 차득규(車得圭), 지후(祗候) 윤해(尹諧)와 더불어 별감이 되어 감찰별감(監察別監)과 함께 태부(太府)의 세입을 여러가지로 조사하여 경비를 줄이고자 하였으나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279년 사패(賜牌)를 사칭하여 점령한 전토를 신흥창(新興倉)에 몰수당하기도 하였다. 그 뒤 1281년에 정조사(正朝使)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285년에 상장군으로 동경부사(東京副使)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