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문

  • 예술·체육
  • 인물
일제강점기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에 기초를 두고 서편제의 가락을 함께 구사한 판소리의 명창.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0년(고종 27)
  • 출생지전라북도 남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보형 (전 문화재관리국, 음악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에 기초를 두고 서편제의 가락을 함께 구사한 판소리의 명창.

내용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 출신으로 주천면에서 살았다. 유성준(劉成俊)과 장자백(張子佰)의 생질이다. 처음에는 외숙인 유성준에게 판소리를 배우다가 송만갑(宋萬甲)의 고수로 있으면서 그의 소리를 익히게 되었고, 결국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뒤, 송만갑의 영향으로 동편제(東便制) 소리를 하였으나, 서편제(西便制) 김채만(金采萬)의 소리를 듣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운 뒤, 동편제에 서편제의 맛을 섞어서 독창적인 소리를 하였다.

그는 타고난 재주는 적었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명창이 되었고, 판소리뿐만 아니라, 창극에도 솜씨가 있어 서울에 올라와서는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여 크게 인기를 모았다.

그는 특히 「흥보가」 · 「심청가」 · 「적벽가」를 잘하였고 단가인 「홍문연가(鴻門宴歌)」도 잘 불렀다. 남원에 있을 때는 많은 제자를 길렀다. 그 가운데 박녹주(朴綠珠) · 김준섭(金俊燮) · 강도근(姜道根) · 박초월(朴初月) 등은 당대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소리는 동편제에 기초를 두고 서편제의 맛이 나는 가락을 함께 구사하였기 때문에 순수한 동편제라고는 할 수 없다. 현재 음반으로는 「춘향가」 몇 대목과 단가 「홍문연가」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 -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4)

  • - 『조선창극사』(정노식, 조선일보사출판부, 1940)

  • - 「일제강점기 판소리 명창의 생몰연대 고찰」(김석배, 『국어교육연구』45집, 200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