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년(태종 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였으며, 그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만화루(萬化樓) · 교직사(校直舍) ·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과 송조4현(宋朝四賢)이, 동무 · 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서 1796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된 건물이다.
명륜당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1842년에 보수하고 1879년에 중수하였으나 6·25사변 때 다시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복구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고주(高柱)집으로 되어 있다. 전학후묘(前學後廟) 건축형태이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만화루는 2층 누각인데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1635년에 복원하고 1964년에 중수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1973년 향교 일원에 대한 보수가 있었으며, 소장 전적은 18종 25책으로 주로 경서의 낙질본이고, 《향안 鄕案》 등은 보존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