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생. 1942년 일본 도쿄의 아테네 프랑세를 졸업하고, 광복 후 군에 입대하여 국방부 정훈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평론 「문학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 백민, 1948)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자유문학(自由文學)』 주간, 제35차 국제펜클럽 한국 대표(1967), 제38차 국제펜대회 한국 대표(1971) 그리고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1977∼1980)을 통해 한국 문학의 활성화와 세계화에 기여했다.
제1시집 『벽(壁)』(문헌사, 1952)을 간행하여, 북한의 남침으로 야기된 6·25의 참혹상을 투명한 이미지로 조명하였으며, 폐허를 딛고 일어나려는 인간의 의지를 형상화시켰다. 제2시집 『불안한 토요일』(보문각, 1953)은 현대인의 불안을 수학 · 물리 · 화학 등의 기호를 사용하여 지적인 이미지로 묘사하였다.
제3시집 『시사시대(時史時代)』(보문각, 1955)에 이르러서는 서정과 지적인 사고를 결합시키는 시적 노력을 기울였다. 제4시집 『인간조형』(보문각, 1958)에서는 ‘노래하는 시’와 ‘생각하는 시’ 그리고 ‘비평하는 시’를 융합하려 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모더니즘은 프랑스의 상징시와 영미의 주지주의 시, 특히 발레리(Valéry, P.)와 엘리어트(Eliot, T. S.)의 영향을 받아 심화되어 신선한 감성을 발휘했다.
그가 제5시집인 『신시집(新詩集)』(계명문화사, 1965) 후기에서 “한편의 시의 제작은 하나의 경험이다. 그리고 시 독자의 외부적 경험이 되며, 그 내부적 경험과 교감되며, 하나의 질서를 발견시킨다.”라고 말한 것은 그의 주지적 작시 태도를 집약적으로 나타내준다.
평론 「T. S. 엘리어트와 위기의식의 극복」( 조선일보, 1955.11.4.∼6.), 「폴 발레리와 지성의 엄정」(조선일보, 1955.12.15.∼17.), 「현대시와 에즈라 파운드의 위치」( 동아일보, 1959.5.3.) 등에서 보듯이 그의 비평적 관심은 주지주의 방법에 있었다.
서정과 지성을 신선한 이미지로 조형하였다는 것이 1950년대 시단에 기여한 문학사적 의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59년 시집 『인간조형』으로 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78년 제1회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