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정언, 지평, 경성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칭
  • 만고(萬古)
  • 역면(易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44년(인조 2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성판관
  • 출생 연도1598년(선조 3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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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정언, 지평, 경성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만고(萬古), 호는 이면(易眠). 김정헌(金廷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몽호(金蒙虎)이고, 아버지는 승지 김중청(金中淸)이며, 어머니는 이영승(李永承)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4년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제수받았다. 이듬해 정언(正言)이 되었다. 아버지가 광해군을 모신 신하라고 하여, 간원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류(金瑬)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정언이 되었으며, 그 뒤 지평(持平)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의 강도파천(江都播遷: 강화도로 피난함)에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여 탄핵을 받았다. 1632년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있을 때, 온 집안이 큰 변을 만나 숙부가 옥에 갇히고 할머니는 자살하였으며 김주우도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서예에 명망이 있어 13세에 진주 촉석루의 액(額)을 썼으며, 1625년에 왕명으로 동궁의 대병(大屛: 큰 병풍)에 사잠(四箴: 네 가지의 잠언)을 쓰기도 하였다. 인조는 즉위하기 전부터 그 재질을 알고 발탁하여 쓰고자 하였으나, 아버지와 숙부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하급직에 머물고 말았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눌은선생문집(訥隱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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