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5년(충렬왕 21)에 대장군 유복화(劉福和)와 함께 지후(祗候)로서 원나라에 있는 세자에게 보내는 돈과 폐백을 운송하였다.
1307년 좌승지가 되었으며, 충선왕이 즉위하자 정대(鞓帶)를 하사받고, 1311년(충선왕 3) 좌상시(左常侍)로서 원나라 태자의 생일축하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같은 해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1314년(충숙왕 1) 낙안군(樂安君)에 봉해지고 충근익대공신(忠勤翊戴功臣)이 되었다.
그 뒤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에게 아부하여 판사 김천일(金千鎰) 등과 원나라에 충숙왕을 참소하다가 1328년에 영해부사(寧海府使)로 좌천되었으며, 이듬해 원나라의 명으로 복직되었다.
이후 1339년(충숙왕 복위 8) 조적(曺頔)의 난으로 충혜왕이 원나라에 불려가서 국정이 공백상태에 이르렀을 때 김자(金資)와 함께 원나라 왕의 명으로 임시로 국사(國史)를 관장하여 국정을 한손에 쥐었으며, 경화공주(慶華公主: 충숙왕의 비)의 명으로 권정동성(權征東省)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