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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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물
해방 이후 「오발탄」 · 「잉여인간」 · 「벙어리 삼룡이」 등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3년
사망 연도
1999년
출생지
충청남도 서천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오발탄」 · 「잉여인간」 · 「벙어리 삼룡이」 등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
내용

1923∼1999. 충남 서천(舒川) 출생. 서천국민학교와 대전중학을 나와 1942년일본 오이따겐(大分顯) 우좌(宇佐) 농업전문학교 2년을 수료하였다.

귀국 후 조선연예주식회사의 연구생이었고, 약초(若草) 연예주식회사 연구부에서 연기를 배우고 1947년 장미극단을 창설, 첫 공연으로 「아름다운 새벽」을 선보였다. 1954년 진해 공연 중 이강천(李康天)감독에게 발탁돼 다음해 「피아골」(1955)의 주인공으로 영화계에 진출하였다.

그 뒤 「포화 속의 십자가」·「처녀별」·「옥단춘(1956)」·「사랑(1957)」·「사랑하는 까닭에(1958)」·「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청춘극장(1959)」·「하녀(1960)」·「박서방」·「흙」·「성춘향(1961)」·「고려장(1963)」·「전쟁과 여교사」·「유정」·「태양은 다시 뜬다(1966)」·「카인의 후예(1968)」·「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세종대왕(1970)」·「의사 안중근(1972)」·「불꽃(1975)」·「아라비아의 열풍(1976)」·「난중일기(1977)」·「호국 팔만대장경(1978)」·「내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82)」·「가고파(1984)」 등 조연을 포함 260여 편에 출연하였다.

30여년에 이르는 그의 영화생애 가운데 「오발탄(1961)」의 박봉 계리사, 「순교자」(1965, 이상·유현목 감독)의 주인공 머슴 역을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오발탄」을 포함한 「잉여인간(1964)」과 「벙어리 삼룡이」·「추풍령(1965)」·「삼포가는 길(1975)」, 그리고 「아빠 안녕(1959)」·「이 생명 다 하도록(1960)」·「새엄마(1963)」 등 히트작이 증명하듯이 그는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서부터 향토색 짙은 문예물,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배역을 소화해낸 1950·60년대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였다.

이 밖에 메가폰을 잡을 작품으로 김용익 원작 「종자돈」(1967)과 금전적 손실을 안겨준 제작 영화 「성웅 이순신」(1970) 등이 있다. 상복도 좋아 1962년도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4년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잉여인간), 1965년도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벙어리 삼룡이), 1966년도 대종상 남우주연상(태양은 다시 뜬다), 1975년도 대종상 남우주연상(삼포가는 길) 등 국내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배우협회 회장,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예총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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