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이 원나라에 불려갔을 때 시종한 공으로 1등벽상공신(一等壁上功臣)이 되어 전(田) 1백결과 노비 10구를 받았다.
1343년(충혜왕 복위 4)에 왕이 다시 원나라에 잡혀가 연경(燕京)에서 2만여 리 떨어진 광둥성(廣東省) 차오저우(潮州) 지방 치양(揭陽)으로 귀양갈 때 함께 붙들려가서 이듬해 영주로(永州路)에 귀양갔으나 곧 풀려 귀국하였다.
그 뒤 1352년(공민왕 1) 왕의 밀지를 받은 삼사좌사(三司左使) 이인복(李仁復)의 명에 따라 권신 조일신(趙日新)을 참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