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영의정,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52년 승지에 오르고, 이어 대사간·비변사부제조(備邊司副提調)·대사성·부제학(副提學)·이조참판·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1762년 이후 이조·호조·형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1765년 우의정에 올라 내의원도제조(內醫院都提調)를 겸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그 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영중추부사를 거쳐 다시 영의정을 지냈다. 1772년 당파를 조성했다는 죄로 직산현(稷山縣)으로 유배되었으나, 반년 만에 풀려나 영중추부사로 다시 서용되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판중추부사로 기용되어 고부 겸 승습주청사(告訃兼承襲奏請使)의 정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다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거쳐 봉조하가 되어 『명의록(明義錄)』 편찬을 주관하고, 1785년에는 『대전통편(大典通編)』 편찬을 주관하였다. 이듬해 영의정으로 기용되어 정조의 명으로 당쟁의 조정에 힘썼다.
성품이 치밀하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로, 나라의 전고(典故)에 정통해 이를 정사에 잘 활용하였다. 편저로 『명의록(明義錄)』·『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記)』가 있다. 시호는 헌숙(憲肅)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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