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산업부 상공과 과장, 충북지사, 충남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견습 기간을 끝낸 후 1912년 5월 조선총독부 서기(書記)에 임명되어 충청남도 노성군(魯城郡)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이후 1914년부터 청양군(靑陽郡) 재무계,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서무계를 거쳐 1919년에는 함남 홍원군 간이기상관측소(簡易氣象觀測所) 보조원으로 근무하였다. 1922년 함남 장진군(長津郡)과 1923년 도속(道屬)으로 함남 내무부 지방과 및 사회과 등에서 근무하다가 1924년 함남 풍산군수(豊山郡守)로 승진하였다. 이후 1927년 9월 함남 신흥군수(新興郡守), 1931년 영흥군수(永興郡守) 등을 지냈다. 1934년 도이사관(道理事官)으로 승진하였고, 함남 산업과장에 임명되었다.
1940년 9월 경기도 도이사관으로 근무하였고, 1942년 3월 평안남도 참여관으로 임명되어 평안남도 산업부장·식량부장·농상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1944년 8월 충청북도지사, 1945년 6월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1924년 풍산군수로 임용된 이래 약 20여년간 군수, 도이사관, 참여관, 도지사 등 고위관료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하였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昭和大禮記念章], 1932년 국세조사기념장(國勢調査記念章), 1935년 시정 25주년 기념표창과 은배 등의 수많은 표창과 훈6등부터 훈4등까지 서보장 등 훈장을 받았다. 1940년 4월에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5등 쌍광욱일장을 받았다. 또한 도내 정보 수집과 정보 선전활동을 담당하는 평안남도 정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매일신보』에 도민의 황민화 촉진에 적극 임할 것을 천명하는 글을 게재하였다. 함경남도 산업과장, 상공과장 재직시에는 도민들을 압박하여 각종 군수품을 조달하는 데 앞장섰다.
박재홍의 일제강점기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54~66)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7(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 『일제하 조선인관료 연구』(박은경, 학민사, 1999)
- 『新興之北鮮史』(朝鮮硏究社 編, 1937)
- 『咸鏡南道事業と人物名鑑』(畑本逸平 編,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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