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 상거동에 위치한다. 1973년 7월 1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완(李浣, 1602~167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효종의 북벌계획에 참여하였다.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고 만포첨사를 거쳐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있다가 병자호란을 맞이하였다. 이 당시 그는 도원수 김자점 휘하에서 승전을 거두었고, 난 후에는 임경업의 부장으로 명나라 공격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의 공격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한동안 벼슬하지 못하였다가 효종 즉위 후에 어영대장을 거쳐 병조참판, 훈련대장을 역임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옮기면서도 훈련대장만은 16년 동안 겸직하였다. 특히 그는 무신 출신으로 현종대에는 우의정에까지 올랐다.
봉분을 중심으로 좌우 및 후면에 곡장(曲墻)이 있고,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 장명등(長明燈)이 중심선에 위치한다. 그 좌우로 동자석(童子石)·망주석(望柱石)·문인석이 각 1쌍씩 차례로 배치되었다. 이중 장명등과 동자석은 도난을 당해서 2006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봉분 오른쪽으로 묘비가 있으며, 신도비(神道碑)는 묘역으로부터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다. 특히 1688년(숙종 14)에 건립된 신도비는 이수(螭首), 비신(碑身), 귀부(龜趺)로 구성되었는데, 이수의 이무기와 귀부의 거북이 모습이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민정중(閔鼎重)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