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갑곶이라는 명칭은 고려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강화도로 피난할 때 이곳이 육지와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 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나루터 시설이 별로 없이 갯벌만 있었으나 1419년(세종 1년)박신(朴信)이 사재(私財)를 털어 양쪽 언덕에 돌을 모아 석축로를 만들어 주민 통행의 편의를 도모하였다고 한다.
그 뒤 이곳은 1627년 정묘호란 당시에 인조가 건넜던 사실이 있고,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수비(守備)를 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1866년 병인양요 때에도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렀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이 석축로는 1900년대까지 강화도와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통행시설로 이용되었으나 1920년경에 성동리와 강화군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가 신설되어 옛 나루터는 폐쇄되었다.
광복 후 나루터 부근에 자동차를 나르는 도선장(導船場)이 생겨 이용되다가 1970년 강화대교가 건설되면서 두 나루터 모두 폐쇄되었고 주변의 제방 공사로 인하여 원래의 시설들도 상당부분 없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