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역은 약 50여 평이며, 봉분 앞부분에 장대석(長臺石)으로 호석을 쌓고 묘 앞에 장대석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만들어 놓았다.
봉분의 규모는 높이 200㎝, 둘레 18m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으며 왼쪽으로 묘비가 세워져 있다. 화강암으로 된 비의 규모는 높이 150㎝, 비 높이 120㎝, 너비 52㎝, 두께 15㎝이다.
비 전면에는 ‘조선개국공신계림군김공균지묘(朝鮮開國功臣鷄林君金公稛之墓)’라는 명문이 쓰여져 있고, 뒷면은 행장(行狀)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아래 계절에는 근래에 새로 만들어 놓은 육각형의 장명등(長明燈)이 세워져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쌍과 양석(羊石)이 갖추어져 있다.
묘 앞쪽으로 70여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비의 규모는 총높이 303㎝, 비 높이 165㎝, 너비 53㎝로 약식으로 비좌(碑座)와 옥개석(屋蓋石)을 갖추고 있다. 비는 1905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송병선(宋秉璿)이 짓고 윤용구(尹用求)가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영한(金寧漢)이 하였다.
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묘역이 실전(失傳)되었다가 이 묘역이 있던 고을 유수(留守)로 온 후손 김사목(金思穆)이 수소문하여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묘역 건립의 시기를 18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묘비 역시 이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