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마농장은 일제의 앞잡이로 러일전쟁 당시 군용지 매입을 중개, 자본을 축적한 대판(大阪) 상인 하자마가 1928년 김해에 설립한 소작제 농장이었다. 총면적 2,800정보로서, 2천 호의 소작농가가 소속되어 있었다.
하자마농장 농업경영의 특징은, 소작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중간관리인인 간사(幹事)들에게 소작인들로부터 거둬들인 소작료 1석당 13∼15전(錢)의 보수를 지급한 것이다. 때문에 간사들은 보다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소작료를 늘려 소작인들의 원성을 샀다.
마침내 1931년의 흉작을 계기로 소작인들은 10월 16일 농장측에 소작료감액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쟁의에 돌입하였다. 소작인들은 김해농민조합의 지도 아래 추수를 거부하며 경상남도청과 김해군청 등 관계당국에 진정하고, 농장사무소와 부산의 하자마본점에서 농성을 계속해 요구조건을 관철하였다.
그러나 11월 13일 일제는 쟁의에 대한 보복으로 김해농민조합 간부 등 13명의 주동자들을 검거하였다. 이에 소작인들은 소작쟁의를 식민통치당국에 대한 항쟁으로 발전시켜 김해경찰서에서 시위를 벌임으로써 피검자를 모두 석방시켰다. 또, 농장측이 소작인대표 11명의 소작권을 박탈한 데 대항, 200여 명의 소작인이 하자마본점에서 시위, 일본 경찰과 충돌하였다.
뿐만 아니라 1932년 2월 15일 일제가 재차 쟁의주동자 13명을 검거하자, 김해·마산경찰서에서 피검자 석방을 위한 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농장사무소와 농장직원의 사택을 습격하였다. 결국 소작인들은 농장측의 소작권 박탈 횡포를 철회시키고 쟁의를 끝마쳤다. → 소작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