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9월 설립된 조선흥업은 일본 시부사와재벌(澁澤財閥)의 직계회사로 한국에서 1만 7,000정보(논 5,000정보, 밭 1만 1,000정보, 기타 1,000정보)의 토지를 소작제로 경영하던 전형적인 식민농업회사였다.
특히, 조선흥업은 논을 경영하여 미곡을 수탈하던 다른 식민농업회사와 달리, 주로 밭을 경영하여 콩·면화를 수탈하였다. 황주농장은 조선흥업의 가장 큰 수탈농장으로 1905년에 설립되었고, 규모는 소유토지가 8,367정보(논 670정보, 밭 7,375정보, 기타 322정보)이고 소작농은 4,869호였다.
따라서, 조선흥업은 황주에 지점을 두고, 지점장을 최고관리자로 하여 농장을 경영하였다. 이와 같은 황주농장에서 1924년조선흥업은 종전보다 대폭으로 소작료를 인상하여 징수하였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같은 해 2월 19일 황주읍에 있는 조선흥업지점에 몰려가, ① 소작료 인상을 철회할 것 ② 인상된 소작료로 징수한 소작료를 반환할 것 ③ 금년 소작료는 5할로 할 것 ④ 소작료 선곡(選穀)을 가혹하게 하지 말 것 ⑤ 소작료 양정(量定)을 공정하게 할 것 ⑥ 소작인의 인격을 무시하지 말 것 ⑦ 소작료는 콩으로만 징수하지 말고 심은 대로 할 것 등을 요구하며 쟁의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같은 달 20일에는 600여 명의 소작인들이 시위를 벌여 지점장으로부터 본사와 협의한 뒤 조처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황주지점에서는 소작인들을 기만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200여 명의 소작인들은 3월 23일 다시 시위를 벌이며 제지하는 일본경찰을 밀어내고 지점 사무실에 난입하였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7명의 소작인들이 붙잡히는 희생을 치르고 쟁의는 끝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쟁의는 곧 이은 북률동척농장소작쟁의 등 황해도 지방 소작쟁의의 기폭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