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섭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혁명일심회 사건 당시의 군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8년(고종 15) 1월 7일
사망 연도
1929년 12월 11일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
관련 사건
혁명일심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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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대한제국기 혁명일심회 사건 당시의 군인.
생애 및 활동사항

1878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했다. 1895년 3월에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일(渡日), 1895년 부터 게이오기쥬쿠[慶應義塾] 및 세이조[成城]를 거쳐, 1898년 11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입학, 제11기와 함께 1899년 수료했다. 이후 도쿄 아소[麻生] 소재 일본군 제1사단 제3연대 부(附)로 근무했다.

1900년 7월 한국군 보병 참위(參尉)로 임관했으나,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의 배일감정으로 귀국이 허락되지 않아 반망명생활을 했다, 이때 유길준(兪吉濬)과 연계, '친러정권 타도, 자주정부 수립'을 목표한 혁명일심회(革命一心會)에 참여했다. 1901년 초 귀국한 뒤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 교관이 되었으나, 이듬해 혁명일심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1904년 감형되어 전라남도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1905년 10월 사면을 받고 육군 참위로 복직한 후, 무관학교 학도대 중대장, 시위(侍衛) 보병 제2대대 교관을 거쳐 1906년 6월 육군 보병 부위(副尉), 7월 육군 공병 정위(正尉)로 진급했다. 이후 무관학교 중대장 등을 거쳐 1907년 군부(軍部) 군무국 병기과에서 근무했다.

일제강점 이후 조선주차군(朝鮮駐箚軍) 사령부에 편제되어 이왕부(李王附)에서 시종무관으로 이준공부(李埈公附) 및 이강공부(李堈公附) 무관을 지냈으며,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20년 4월 일본군으로 전환, 보병 소좌(小佐)로 임명되어 훈5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고, 1925년 중좌로 승진, 1927년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1929년 12월 11일 사망했다. 육군 대좌, 종5위에 추서·서위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비극의 군인들』(이기동, 일조각, 1982)
『대한제국관원이력서(大韓帝國官員履歷書)』(1972)
『매일신보(每日申報)』
『金亨燮大佐回顧錄』(市明正明 編, 『日韓外交史料』 10, 原書房, 1981)
집필자
심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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